<브레이킹 아이스>에서 가장 좋은 장면은 세 남녀가 백두산 천지를 가는 장면이다. 하오펑은 어머니한테 들었다며 환웅 설화를 얘기한다.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호랑이와 곰이 있었고 이들에게 쑥과 마늘을 주며 100일간 동굴에서 버티라 했더니 호랑이는 못 견디고 나오고 곰은 버티어 여자 웅녀가 됐는데 환웅이 이 웅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다는 얘기다. 우리의 고조선, 단군의 얘기지만 영화는 중국의 동북공정(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중국의 역사로 귀속시키려는 중국의 주관적, 수정주의 역사 연구)을 염두에 둔 듯,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밝히지는 못한다. 그럼에도 이 장면은 꽤나 서정적으로 찍혀졌으며 일행은 천지를 가는 도중에 설산에서 곰과 직접 맞닥뜨리기까지 한다. 그러나 이게 실제인지 환상인지는 불분명하다. 중요한 것은 이 곰과의 만남으로 셋은, 자신들 청춘의 한 페이지가 끝줄에 와 있으며 이제 그 페이지가 터닝돼야 함을 깨닫는다. 그 정리의 시선이 매우 수려하다.
감독인 안소니 첸은 현대 싱가포르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이다. 싱가포르와 영국, 중국을 오가며 영화를 찍고 있는 코스모폴리탄이다. 장편 데뷔작 <일로 일로>가 2013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. 이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기도 했으나 국내에서는 싱가포르 영화가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해 왔다. 안소니 첸이 최근 국내에서 인기를 끈 일본 네오 소라 감독의 영화 <해피엔드>의 제작자라는 점은 새로운 발견 격이다. 첸의 2019년 영화 <웻 시즌>도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바 있다. <브레이킹 아이스>는 지난 4일 개봉됐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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